무언가 적고 싶은 게 있어서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새 이 블로그로 오게 된다. 나름 오래 썼었으니까 정이 남아서일까?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 했었다는 글을 쓴 뒤로도 시간이 꽤 흘러 이제 12월이 됐다. 나는 계속 할 일들로부터 도피했고 그래서 죄책감에 짓눌렸고 울다가 웃다가 정말 미친년이 할 법한-혹은 방황하는 사춘기 청소년이 저지를만한-짓들을 차근차근 매뉴얼대로 실행했다. 나는 일기를 쓸 때면 마치 소설쓰는 것처럼 전지적작가시점에서 쓰는 버릇이 있다. 지금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건, 아니 일단 무언가 적을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는 뜻일거라고 애써 생각해본다.
그래 몇 주 전에는 수면제를 왕창 먹었다. 비틀거리면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음날 늦잠을 잔 것 외에는 죽음과 연결될만한 어떤 희망도 없었다. 유서는 하도 쓰다보니 지쳤다. 이젠 쓸 말도 없었고, 그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만 적으면 될 것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병의 무서운 점은, 지금까지 살아오게 해준 것들로부터 완벽하게 눈을 돌리게 한다는 거다. 그 다음날 나는 절망해서 다시 그 아파트로 갔다. 약이 덜 깨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택시까지 잡아타면서. 13층에서, 그 바닥을 내려보면서 또 한번 절망한다. 이렇게나 죽고 싶어하는데 도저히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사실 그 때 눈 앞에 어른거리던 건 몇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사람들은 분명히 울겠지. 웃긴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것만이 맘에 걸렸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아주 사소한 일로 손목을 그었다. 자세한 내용은 어차피 가정사라는 뻔한 레퍼토리니까 넘어가손 치더라도 정말 평생 안해본 짓을 했다. 나는 경찰이 온 틈을 타서 집을 뛰쳐나가 소주 두병을 샀다. 눈 앞에 보이던 여관에 무작정 들어가서 방을 잡았다.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면서 즐겁게 소주 두병을 마셨다.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서 노트 두장 분량의 유서를 썼다. 가방 속에 있는 물건들 중 대부분이 선물받았거나 누군가와 함께 고른 것들이었다. 나는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울었다. 너무 울었는지 렌즈가 한짝 빠졌다.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죽을 예정이었으므로.
최근 생긴 이상한 강박은 '반드시 그 하늘색 커터칼이어야만 한다'는 거다. 필통 안에 그 커터칼이 없었으면 그날 밤 피볼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손목을 그었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 욕실로 가려는데 문이 따이는 소리가 났고 엄마, 동생, 그리고 여관 주인이 들이닥쳤다. 피를 본 누군가가 구급차를 불렀다. 내가 그 시간동안 흘린 피는 헌혈할 때 남에게 준 피 한팩만큼도 되지 못했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 못쓰게 된 물건만 한바가지인데.
웃긴 건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술+진정제+자해를 한 정신에서도 또렷하게 고대병원은 싫으니까 한도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던 거. 구급대원은 나같은 사람이 아주 많다고 했다. 그럴 것 같다. 구급차에 실려서까지 죽겠다고 발악하는 거 되게 웃기잖아. 어쨌든 친절하게도 구급차는 한도병원 응급실로 가줬다. 난 열두바늘을 꿰맸다. 자해라 보험처리가 안돼서 12만원이 나왔다. 술먹은 정신에도 사교성을 발휘해 보험처리를 시켰다. 4만원으로 줄었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몇바늘밖에 안 꿰매놓고 4만원이나 받아처먹었다고 욕했다. 집에 와서는 소주 두병의 여파로 내내 토했고 마취가 풀린 손목이 아프다고 지랄했다. 그 뒤엔 이틀에 한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가서 소독하고 붕대를 갈고 하는 중이다. 친절하게도 자해한 부분까지 소독을 해줘서, 누가 보면 손목이라도 부러진 사람처럼 붕대를 감고 있다. 염증 방지용 약까지 먹느라 하루에 먹는 알약이 열다섯알도 넘는다.
상처는 너무나도 잘 아물고 있다.
그리고 이 와중,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울음이 나올 것 같은 사람들. 이 맘은 아직 글로 쓸 수 없다.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도, 또 죽으려고 지랄할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무섭다.
